파르테논 신전 (엔타시스, 아테나 신화, 문화재 반환)

유네스코 로고 안에 파르테논 신전이 들어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2,5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 인류 문명의 공식 얼굴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몇 해 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그 신전을 처음 마주하던 순간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백색 대리석이 지중해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반사되던 그 장면은, 솔직히 말하면 사진으로 수십 번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엔타시스, 직선인 줄 알았는데 전부 곡선이었습니다

파르테논을 보기 전에 저는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웅장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건물이겠지.' 일반적으로 고대 신전이라 하면 반듯한 직선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올라가 보니 완전히 달랐습니다.

파르테논의 46개 기둥은 중간 부분이 살짝 불룩하게 솟아 있습니다. 이를 엔타시스(entasis)라고 하는데, 기둥 중심부를 약간 굵게 만들어 시각적으로 더 안정되고 생동감 있어 보이도록 설계된 기법입니다. 수직으로 가늘게 뻗은 기둥은 멀리서 보면 중간이 오목하게 들어가 보이는 착시가 생기는데, 엔타시스는 그 착시를 교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곡선입니다. 2,500년 전 건축가들이 인간의 시지각(視知覺), 즉 눈의 착각 현상을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기둥 옆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그 곡선이 아주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채지 못했을 미세함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배려가 건물 전체를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우리나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도 같은 원리입니다. 배흘림기둥이란 기둥 아랫부분과 윗부분보다 중간 허리 부분이 볼록하게 불거진 형태를 뜻하는 우리말 건축 용어입니다. 동서양이 서로 교류 없이도 같은 미적 해결책에 도달했다는 점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닥과 지붕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에서 보면 수평 직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운데가 미세하게 솟아 있는 곡선 구조입니다. 이를 쿠르바투라(curvatura)라고 합니다. 완벽한 직선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눈에 처져 보이기 때문에, 약간 들어올린 곡선이 시각적으로 더 반듯하게 느껴지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이 정도 정밀함이라면 '고대 건축물'이라는 표현 자체가 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파르테논이 후대 건축에 남긴 유산은 그 규모만큼이나 광범위합니다. 도리아 양식(Doric order), 즉 기둥 상단에 화려한 장식 없이 단순하고 묵직하게 마무리하는 양식은 힘과 절제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이 양식을 차용한 건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희대학교 본관 —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모티브로 설계된 국내 대표 사례
  2. 덕수궁 석조전 — 대한제국 시기 서구 고전 건축을 받아들인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건물
  3. 미국 링컨 기념관 — 도리아 양식 열주(列柱)가 파르테논을 정면으로 참조
  4. 영국 대영박물관 정면부 — 그리스 부흥 양식의 전형으로 꼽히는 사례

신고전주의란 18~19세기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의 형식을 의식적으로 되살린 양식을 가리킵니다. 파르테논이 단지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까지 살아 기능하는 건축 언어라는 증거입니다.

아테나 신화를 다시 읽었을 때 불편해졌습니다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입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아테나와 메두사 이야기를 처음 제대로 들었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신화 특유의 박진감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다시 정리해보니 불편한 지점이 생겼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성 사제였습니다. 그런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녀에게 집착했고, 아테나는 그 분노를 포세이돈이 아닌 메두사에게 쏟아부었습니다. 메두사를 뱀 머리카락과 시선만으로 돌로 만드는 눈을 가진 괴물로 변신시킨 것입니다. 이후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베어 아테나에게 바쳤고, 아테나는 그 머리를 자신의 방패 아이기스(Aegis)에 부착했습니다. 아이기스란 신화 속에서 신이 지닌 방어구를 뜻하며, 오늘날 '누군가의 비호 아래'라는 뜻으로 쓰이는 영어 표현 'under the aegis of'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파르테논 신화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 지닌 강인함의 서사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야기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결이 좀 다릅니다. 가해를 한 포세이돈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피해를 입은 메두사는 괴물이 되어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납니다. 아테나의 분노가 약자에게 향했다는 구조 자체가 불편합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사회의 성별 불평등(gender inequality)을 반영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그 해석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별 불평등이란 성별에 따라 사회적 권리나 기회가 차등 적용되는 구조적 불균형을 뜻합니다. 신화는 결국 인간이 만든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만든 사회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파르테논이라는 공간이 단지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 사회가 어떤 질서 위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이기도 하다는 점을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오며 생각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 중 하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입니다. 보편적 가치란 특정 국가나 문화권을 초월하여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파르테논이 담고 있는 보편적 가치에는 그 아름다운 건축과 함께 불편한 서사도 솔직하게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름다움만 기억하고 그늘은 지우는 방식의 유산 소비는 반쪽짜리 이해일 수 있습니다.

문화재 반환 논쟁, 파르테논 앞에서는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파르테논을 이야기하면서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엘긴 마블스란 19세기 초 영국 외교관 엘긴 경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받아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낸 대리석 조각상과 부조(浮彫) 작품들을 말합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리스는 수십 년째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신전에서 남은 조각들과 대영박물관에 있는 조각들을 나란히 비교해 전시해놓은 구역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마음이 묘하게 불편했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조각이 절반은 아테네에, 절반은 런던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 설명 패널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전달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외교적으로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으로 다뤄집니다. 그런데 파르테논이라는 세계유산의 맥락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소유권 분쟁이 아닙니다. 문화재의 문맥(context), 즉 원래 만들어진 장소와 환경 속에서 해석될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가지는 유산의 특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UNESCO World Heritage Centre)도 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을 보존의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분리된 조각들은 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또 하나의 역사적 상처도 있습니다. 17세기 베네치아-오스만 전쟁 당시 오스만 군대가 파르테논을 화약 창고로 사용했고, 1687년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내부가 폭발하며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수천 년을 버텨온 신전이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다 무너진 것입니다. 이 사건만 봐도 인류의 유산이 정치와 전쟁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납니다.

부산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시점에 파르테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유산을 '보존'한다는 것이 단지 건물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그 맥락과 역사적 진실을 함께 지켜내는 일임을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발표한 세계유산 관련 자료에서도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물리적 보존과 함께 문화적 맥락의 보전을 동시에 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르테논 신전이 유네스코 로고에 사용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파르테논이 '세계유산 1호'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류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등재 번호나 순위를 매기지 않지만, 상징성 면에서 파르테논이 가장 자주 언급됩니다. 2,500년 이상 지속된 건축적 영향력과 고대 그리스 문명을 대표한다는 점이 그 이유로 꼽힙니다. 제가 직접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봤을 때도, 저절로 납득이 됐습니다.

Q. 엔타시스 기법이 실제로 눈에 보이나요?

A. 일반적으로 현장에 가도 잘 안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기둥 바로 옆에 서서 눈의 초점을 살짝 흐리면 아주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수치로 보면 기둥 직경 차이가 수 센티미터에 불과해 육안으로는 거의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전체 건물을 정면에서 봤을 때 기둥이 딱딱하지 않고 생동감 있어 보인다는 인상으로 체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Q. 엘긴 마블스는 왜 아직도 반환되지 않았나요?

A. 영국 측은 19세기 당시 합법적인 허가 아래 취득했고,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은 법적으로 반출이 제한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허가 자체가 무효라고 반박하며 수십 년째 반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협상이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문화재 원산지 반환 문제는 파르테논만이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유산에 걸쳐 있는 공통 과제입니다.

Q.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파르테논 엔타시스는 직접적인 영향 관계인가요?

A. 직접적인 교류나 전파의 증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동서양이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시각적 문제, 즉 기둥이 가운데가 잘록해 보이는 착시를 해결하기 위해 유사한 방법에 도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사례는 인류의 미적 감각과 문제 해결 방식에 보편성이 있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Q.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세계유산협약 가입국들이 매년 모여 신규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하고, 기존 세계유산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는 국제회의입니다. 등재 기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문화유산 6개 기준과 자연유산 4개 기준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합니다. 2025년에는 부산에서 제48차 회의가 열렸습니다.

파르테논은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이견을 달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오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2,500년을 버텨온 건물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이것이 얼마나 훌륭한가'가 아닐 수 있다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되돌려줄 것인가, 누구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것인가. 세계유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 질문들 위에 서 있다고 봅니다.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가 건물의 보존을 넘어 그런 깊이 있는 논의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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